고휘주문화여유구는 휘주문화 발상지인 안휘성 황산시에 위치하고잇다,휘주고성, 당월패방군 포가화원, 당모, 잠구민택, 정감촌등5개주요 관광지로 구성이 되엿으며 북쪽은 황산풍경구 남쪽은 천도호랑 연결되엿잇다...【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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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도화원---휘주고운자유여행

환상의 도화원---휘주고운자유여행

예로부터 지금까지 휘주는 명인들이 많이 나왔다.

휘주의 산수풍물이 고아하고 평온하며 고민가는 더욱더 독특한 특색이 잇다. 

고휘주는 안휘성 둔계, 흡현, 이현, 적현, 휴녕등 지역이 속해있었다. 

따뜻한 봄날 봄바람이 실어다주는 싱그럽고 소박한 향촌의 정취는 그야말로 도화원에 취해사는 황홀함을 준다.

만약 이런 정취에 마음이 흔들렷다면 이 가을부터 당신의 휘주자유여행을 해보라

아래 일정은 단지 어느곳에서부터 어느 목적지까지 거리가 아니라 전일에 해당하는 일정이다)。

선로설계:
북경 – 남경  전일 1000키로

우선 경진당고속도로에 올라 이번의 자유여행을 시작한다

첫번째 목적지는 남경

경호고속도로로 가면 된다

경진당고속도로 자양촌 출구에서 내려서(고속도로 요금 25원), 38키로 직진후 경호고속도로에 오른다.

다음 하북톨게이트에 도착하여 (고속도로 요금 40원), 하북에서 산동 톨게이드에 들어선다.
(고속도로 비용 225원)

경호고속도로화이인출구에서 녕련공로(고속도로 아님) 남경방향으로 이동( 고속도로 요금 30원)

남경장강대교를 거쳐 남경시내에 도착。

남경 – 황산  전일 300키로

남경시내에서 출발

마안산 고속도로로 마안산 도착(고속도로 요금 20원)후, 바로 205국도로 무호로 이동(110키로)

선무고속도로로 선성서에 도착,(72키로)

318국도로 남릉으로 이동 (43키로)

남릉에서 다시 205국도로 경현을 거쳐 절계-채가교-당구로 이동 (149키로)

이동중 도로표시가 비교적 정확하며, 길을 잘못들어서면 같은 도로에서 3번정도 길을 물어보고 3번다 같게 알려주면 맞는것이며 도로표시랑 타인이 알려준 것이 틀린다면 도로 표시가 잘못되였거나 두갈래 길로 다 갈수 있는것이다.  (전일정 도로비 50원)

황산 – 굉촌   전일 92키로

황산 관광후 황산정문에서 출발하여 굉촌방향으로 이동한다.

황산에서 굉촌으로 가는 길은 여러갈래이다

첫번째 노선은 당구에서 남쪽으로10키로되는 유촌에서 서남방향으로 16키로 가면 괸촌에 도착

두번째노선은 지금 여행객들이 제일 많이 다니고 있는 길이며 황산풍경구에서 휴녕으로 이동후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어정에 도착후 다시 북으로 이동하면 굉촌에 도착

이 구간은 도로가 좋고 도로표지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거리가 제일 멀다. (92키로)

세번째노선은 당구에서 남쪽으로 20키로 가면 란전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란전,소계를 거쳐 다시 서채를 거친후 석산 및 굉촌까지 도착하는데 거리상 72키로로서 제일 가깝다。

굉촌 – 둔계- 흡현   전일 131키로
 
이구간에는 휘주의 대부분 경치가 집중되여있어 이동중에 굉촌, 관록 남평, 서체, 어량, 허촌, 화산미굴, 당월패방군등을 경유하여 흡현에서 투숙하면 된다.
여기서 보충설명드리는것은 휘주 각 동네마다 교통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도로상황이 대부분 양호하고 차량이 적기에 즐기면서 운전할수 잇다

다만 대도시와 비길수 없이 주유소가 아주 적고 기름도 90호이상이 거의 없다

이현이나 흡현, 둔계에서 미리 주유하고 오는걸 건의한다。

흡현 – 경원 – 이갱 전일 101키로

경원에 들어서면 두갈래 길이 잇는데 한갈래는 경덕진방향,다른 한갈래는 둔계방향으로 향하는 길인데 보통 왕복으로 두갈래 길을 다 달린다.

둔계방향의 도로는 아스팔트 도로로서 도로상황이 좋은편이다

귀환할때는 경덕진에서 고속도로에 올라 구강 – 합비로 해서 북경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할수 잇다.

대표적인경치:이현

이현은 황산의 옛명 이산으로 하여 이름을 얻게 되엿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은 황산이랑 이어져잇어 역사상 외부와의 교류가 힘들엇기에 “세외도원”이란 생태환경을 보유하게 되엿다。
이현은 휘문화의 주요한 발원지이다

완정하게 보존되여잇는 3600채의 고민가는 눈부신 화석이 군산에 널려 잇는것처럼 아름다운데 그중 서채와 굉촌은 2000년11월30일에 연합국교과문조직으로부터 세계문화유산에 들게 되엿다
 “도화원리인가”로 불리우는 서체촌은 종족혈연관계로 연결되여 호씨가족이 주로 살고잇다
지금까지 224채의 명청고민가를 보유하고잇으며 그중 124채가 완정하게 보존되여잇다
서채는 배모양으로 분포되여잇고 산을 등지고 집을 짓고 옆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그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

제일로 자랑스러운것은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풍습인데 세상에 쫓겨 사는게 아니라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달이 뜨면 귀가하여 휴식하면서 비록 생활은 부유하지 못하지만 자유롭게 자연에 맞춰가면서 생활한다

서채의 일부 주민들의 집문에서 아직도 “도화원리인가”라는 글들을 찾아볼수잇다)。

이는 번화한 도시에서 세상에 쫓겨 힘들게 사는 우리한텐 그야말로 신선의 세계이다

굉촌은 현재 140여채의 명청시기 고민가를 보유하고잇는데 이는 중국고대에 방생학론리에 근거하여 건축되엿으며 굉촌자체가 “우(牛)”모양으로 되여잇다
 

 

촌민들은 동네가운데에 잇는 천연샘을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소의위”로 하고 풍수에 근거하여 나무를 심고 집을 지어 “산을 소의 머리로,나무를 소뿌리로, 주택들을 소의 몸, 다리를 소의 발로”하여 동네를 형성하엿다

승지당은 “민간소고궁”으로 불리우고잇다

이현의 명소로는 그외에 대나무림, 탑천촌, 노천목조루, 남평촌, 관록팔가, 심양대와 도화동 등이 잇으며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흡현

흡현에 옛휘주부가 잇엇다고 하는데 이는 흡현이 휘문화발전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햇다고 할수 잇다

흡현엔 현재 유적지가 19곳, 고분이 13곳이 잇으며 고건축이385곳잇다

명청시기의 사당,패방 등 휘파건축들과 옛거리 돌제방 휘극, 먹과 벼루 등은 큰 매력을 갖고잇다

흡현엔 유명한 석방과 동,남 두개의 초루가 잇다

당월패방군은 전국에서 규모가 제일 큰 패방군이며 7개의 패방은 “충효절의”의 순서로 배열돼잇다

흡현남쪽에의 어량고진엔 보기드문 어량패가 잇고

동쪽의 허촌에 잇는 고양다리와 대관정은 민간산수건축의 대표이며

웅촌의 죽산서원은 휘상들의 지식을 중요시함을 그대로 표한하고 잇으며

북쪽의 랑교는 휘파랑교건축중 제일 우수한 작품이다

둔계
 
둔계옛거리는 둔계의 제일 시중심에 위치해잇으며 길이가 832메터,너비가5~8메터로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되여잇는 송,명,청시기풍격의 보행상업거리이다

건축물들은 휘주민가의 전통적인 건축풍격을 계속 지키고잇다

그중 둔계백수거리에 잇는 청씨7호,8호와29호 3채의 건물은 청씨3택으로 불리우며 명나라시기 민가의 대표작으로 되고잇다

 

 

 

 

고휘주성은 발걸음이 닿는 곳곳마다가 한폭의 아름다운 품경화같다

그때 그기분 지금도 기억난다. 준비물로 가득찬 크고작은 여행가방들을 짊어지고여행길에 나섯엇다 . 아직도  예전에 엄마랑 같이 새벽일찍 상해여행을 나섯던  기억이 떠오른다.

 

별들이 총총한 새벽하늘을 보면서 여행길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기분이 드는것같다고할가... 하지만 아빠는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출발하자고 권유하셔서 나의 타이머신꿈은 물거품이 되여버렷다.

이번여행은 가족이 함께 떠나는 자유여행이엿다, 엄마와 함께 여행에 필요한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하엿고 나름충분한 준비를 하엿다고 생각햇다. 하지만 여행도중에서
생각밖의 문제에 부딪쳣다. 여행일정안배에서 목적지가 불확실하다든지, 지도를 준비하지 않아서 고속도에서 많이돌아가는 바람에 시간과 정력을 많이 낭비하엿다.
(안휘성의 고속도가 안내표시판이 너무 잘되여 잇지않아서  휴계소에서 지도를 사면
많이 편리하다는걸 몰랏엇다.)

휘주라는 지역은 역사가 유구하고 고전문화 느낌이 짙은 발전중의 지역이다. 여기서
는 항주처럼 고층건물들을 볼수 없고 길거리마다  커피샵같은것도 없다 흰벽에 검은
기와는 주택건물의 주요 풍격이다 , 곳곳마다 넝쿨에 둘러싸인 고탑과 줄지어 서잇는 패방들을 볼수잇어 고전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온다, 서현에서는 옛날의 흔적들을 곳
곳에서 찾아볼수가 잇다, 서현에 어량고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잇는데 여기에는 고대에서 제일 위대한 수리공사-어랑패 가 숨겨져 잇다 .

경사도는 너무 크지 않은데 물살이 세여 강물이 패방의 세개도랑에서 흘러내리는것이정말 장관이엿다 , 유람선에 몸을 실으면 방패주변의 인문자연경관들이 한눈에 들어와  그 분위기에 젖어 나의 마음도 한결 평온해지는것같앗다.
뱃사공님도 노를 저으면서 우리에게 마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엇고 신난 우리는 뱃사공의 모자를 쓰고 노도 저어보앗다.
두사거리는 서현에 위치하고 잇는 작은 골목길이다. 비좁은 골목골목, 높은 벽들은 역사현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잇다. 집집마다 대문에는  “문화대혁명을지지하자”
”모주석만세”라는 문화혁명시기 문구들이 붙여져잇다
여기는 아직도 많은 원주민들이 살고 잇고 문옆에 붙여져잇는  한족들의 풍속인 붉
은 종이 춘련은 이 옛거리에 더한층 생기를 북돋아주엇다,
마을안에 잇는 “두산가유치원””소매점””이발실”등은 시간이 오래되여 많이 낡앗지만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잇엇다, 이런 유구한 역사분위기에 젖어서 감상하는 우리
에게 가로막고 관광비용을 내라할때참 짜증이 낫엇다.
점심에우리는고성에잇는휘원1호에서식사를하엿다, 휘주지역특색인 “모두부”를
먹어보려햇엇지만 이상한 이름과 기괴한 모양새에 식겁하여 그냥 “처우두부”를 먹엇다.
유명한 (허국패방)감상할수잇엇는데멀리에서도패방위에적혀진”대학사”란글자를볼수잇엇다. 예부상서 무영전 대학사 허국의 패방이다.패방에 조각한 여섯마
리돌사자는 정교한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하엿다.
정감고진은 첫번째날오후일정에서 마지막관광지엿다 . 이동하면서 우리에게 가이드
해주시겟다고 하는 고마운 분을 만낫다. 이분은 우리한테 자신의 고향인 정감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도 해주엇다
1800년전 동한삼국시기에 건설된 정감은 <역경>중에서 “음””양””두개 기가 통일
되고 하늘과사람이 하나로 합해지다”라는 풍수론리를 기준으로하여 건설하엿다

몇차례  보수건설을 거쳐 정감의 매력은 더 짙어졋고  호수물가에 비낀 그림자조차
은은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잇다.
민간가족사당의 원형돌창문을 통해 정감마을의 하나뿐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당내의 보윤각, 타원형지붕은 400여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고 잇다.
여기저기 살고잇는 원주민집들과 그 벽에는 문화혁명시기 문구들이 아직도 많이 붙여져 잇엇다, 정감을 관광하면서 우리는  “역경”에 관해서도 많이 배웟다.
우리일행은 팔괘돌림판울  돌리면서 자기의 괘도 보앗다, 여행도중 동제대학에서 온
학생을 만낫다 이 학생은 우리에게 팔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도 해주엇다, 그는 우
리가 팔괘를 돌릴때 마음속으로 내가 원하는것을 말하고고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돌려야한다고햇다 ,그말을듣고 호기심이 생겨  학생을 따라 “역경”의 깊은뜻을 탐색
하기 시작하엿다, 처음에는 학생을 뜻을 잘 이해못해서 힘들엇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팔괘의 신비로움에 빠져들엇다 이번여정을 통해서 그뜻을 다 이해는 못햇지만 앞으로도 깊은 뜻을 다시 음미하면서기억을 더듬을것이다

정감촌에서돌아와서우리는휴녕현에갓는데이동네이름이아주특이하엿다.
“안온하게쉬는곳”이라고하엿는데 그말에 휴식하고 안녕이라는 뜻이 숨겨져잇는
것같아 여행객들로 하여금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저녁에 우리는 작으만한 거리에서 휘주음식을 먹엇다 .매운 새우, 오징어 볶음, 등매개 음식마다 아주 독특한 맛으로 우리를 자극시켯다.
휴녕, 아주 친숙한 지방이다.

당신은 아마 이 지방이 무엇으로 유명한지 모를것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지식과 인문예술로 충만한 작은 현성이다.
 
그렇다. 과거에 이 작은 마을에서는 19명의 장원급제생이 나왓고 지금도 많은 인재들이 잇다.

얼마전 전국의 십여명의 장원들이 여기에 모여 장원박물관을 참관하고 교류하엿다.

때문에 이 늦은 밤 우리는 밥을 먹고 휴녕거리를 장원거리를 거닐면서 장원풍채를 보고싶엇다.

비록 자신은 수능에서 낙방하였지만 장원거리를 거닐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소망과 동경으로 부풀엇다.

거리는 아주 번화하였다. 노인들은 춤을 추고 아이들은 광장에서 로라스케이트 타면서 놀고 있엇다

음악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좋게 해주어 낯선 우리도 광장에서 같이 재미있게 어울렷다.

흥이 돋을 무렵 진주알 같은 비방울이 떨어지면서 우뢰가 울고 번개가 치여서 작은 매점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다가 삼륜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P.  S “중국장원박물관”은 밤에 개방하지 않아서 우리는 다음날 다시 참관하엿다.

과거제도를 실시할 때 여기서는 많은 장원들이 나왓으며 명조시기에는 3년에 한번씩 과거시험이 있었는데 매번 50여명이 진사로 선발되여 관직으로 임명되엿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때까지 공부하고 시험치려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알아볼수 없는 서적들과 큰 두루마리의 “순위표”가 있었는데

그중 금방(과거시험 합격자 명단표)에는 많은 휴녕사람들의 명단이 있엇다. 물론 항주전당현 사람들도 있었지만 참으로 대한한 일이엿다.

흥분되여서 인지 나는 온밤을 뒤척이면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날을 샛다.

해빛이 창문사이로 비출 때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일찍 출발해서 목적지인 제운산으로 갓다.

제운산은 원래 백악으로 불리웠으며 “일석이 하늘을 지르고 하늘과 나란히 하고 있다” 라는 뜻으로 제운산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옛날사람들은 이름하나에도 이렇게 시구가 담겨져있다) 

후기: 아름다운 휘주여행은 2008년 7월2일 일몰아래서 막을 내리면서  3일동인 매순간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면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다음번 여행을 기대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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