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휘주문화여유구는 휘주문화 발상지인 안휘성 황산시에 위치하고잇다,휘주고성, 당월패방군 포가화원, 당모, 잠구민택, 정감촌등5개주요 관광지로 구성이 되엿으며 북쪽은 황산풍경구 남쪽은 천도호랑 연결되엿잇다...【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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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소소개
 
당모소개

 

     당모촌은 흡현에 소속되여있으며 현재는 휘주구소속 되여있다.당나라때 월국공 왕화의 조부가 지었다. 공원 623년, 왕화의 후손 왕사립이 고향에 돌아와 우선은 산천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왕사립은 지식이 많고 천문지리에 능통했다.왕사립은 팔쾌에 근거하여 산천사 맞은켠 사자산에 은행나무가 많은걸 보고 여기에서 자손이 번영할거라 여기고 자손들을 거느리고 사자산에 거주하였다. 몇대를 거쳐서 중왕거리 육가원 태자당등 건물을 지었으며 점차 왕씨 가문이 살고 있는 촌락을 만들었다.왕사립이 자손들과 휘주에 다시 돌아왔을때는 주후들의 분쟁이 치열하고 후당조가 이미 건림되여 당나라는 존재하지 않앗지만 왕씨의 자손들은 여전히 당나라를 잊지 않고 잇엇다.왕사립은 당나라시기에 조상들의 영예를 잊지않고 기념하기 위하여 촌락을 만들고 <당모>라고 이름하였다. 1087년 허촌의 허귀일, 허귀이 두형제가 부모가 세상 뜨고 고모부집인 당모에서 살게 되였다. 몇대를 거친후 허씨가 더 번영해져서 당모의 주요 성씨가 허씨로 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고모부의 은덕을 잊지 않고 여전히 촌락을 <당모>라 불렀다.당모의 형성, 명명은 고휘주사람들의 풍수에 대한 애착과 조상에 대한 충성이 융합된 결과로서 역사문화에 한페이를 남겼다.충신은 당모를 지엇고 효자는 유명한 탄간원을 지엇다.전하는데 의하면 당모의 허씨후손 허이성이란 부자가 강남일대에서 36개의 전당포를 경영하면서 살앗는데 그의 모친은 평생을 산에서 살다보니 “인간의 천당” 항주서호에 가보고싶어 아들에게 말 햇는데 년로한 모친의 건강상황으로 보아 산을 넘어 먼길을 떠나기가 아주 불편하엿다.그리하여 이 효자는 많은 돈을 들여 동네옆에 못을 파고 뚝을 쌓은후 항주서호를 본따 정자와 루 각을 짓고 다리를 만들엇으며 호수제방에 꽃을 심어 어머니께서 만년을 보내도록 하엿다.정원내에 는 삼담인월,호심정,백제,옥제교 등 풍경이 잇는데 작은 서자호를 방불케 한다.거울정은 소서호의 중심으로 되여잇으며 정자내 벽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졋는데 소동파,주희,동기창,니원로,문정명,미부 ,채상,자스뵤 등 서예가들의 많은 작품들이 걸려 잇는데 마치 신안비문을 방불케 한다.전하는데 의하면 증국판이 휘주에 태평군을 진압하러 왓을때에 이 보물들에 눈독을 들여 가져갈려 햇지만 체적이 너무 커서 포기 하엿다고 한다.전원내에는 박달꽃이 만발하엿고 시내물이 정원을 에워돌고 잇는데 “시경”중 “박달나무를 잘라 강옆에 둔다”는 시구를 따서 “탄간원”이라고 이름 지엇다.현재 당모는 사자산을 받침으로 서남쪽에 구릉지형의 상형산; 동, 북, 서쪽은 작은 평원, 사자산을 넘어 풍락하로 이루어졌다. 다리를 지나면 계곡남쪽에 은행나무림을 볼수 잇고 은행림앞에는 태자당, 태자당우측에 태자묘가 잇다.태자묘 바로옆엔 전형적인 휘주건축인 “장원부”가 잇다골목길을 지나면 현재 대만국민당요원인 허촌옥의 옛집이 잇다.고양다리를 따라 북으로 내려가면 비구니암과 허씨 대사당이 잇다.앞으로 좀 더가면 유명한 당모 소서호가 잇다소서호를 지나면 <동포한림>이란 패방이 잇다팔각정, 오송교가 깊숙한 장목림에 감춰져 잇다.당모는 그야말로 원림식 고건축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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